수도사

수도사

수도사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 636

관리 수도사 관리소
연락처 055-574-2530
주차시설 가능
장애인 편의시설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로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 양편에 요사채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락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지어 놓았다.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그 뒤 송운대사 유정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있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극락전 앞뜰의 5층 석탑은 하부기단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형상으로 서 있는 바 이 석탑의 원위치는 그 자리가 아닌 듯 보인다. 또 수도사는 동쪽 산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군이 서 있는 바 이것들을 미루어 옛날에는 이 절의 규모가 제법 컸을 것이라는 주지의 말이다.

​한편 이 절이 있는 신덕산은 합천의 황매산으로부터 뻗어 온 줄기로 산세가 매우 웅장할 뿐만 아니라 우거진 잡목림에 경관이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한편 우리고장에는 고찰이 더러 있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지금은 모두 흔적만 남았을 뿐, 이 수도사만이 유일하게 옛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 된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승의 고통을 잊게 해 준다.

수도사[ 修道寺 ]

요약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 신덕산(神德山)에 있는 사찰.
수도사 승방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662년
창건자 원효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덕암로 581-137 지도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 말사이다. 662년(신라 문무왕 2)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원효가 이 절 뒷산에 있는 병풍바위에서 100여 명의 제자와 함께 수도했다고 하며 이런 까닭에 절 이름을 수도사라고 불렀다.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건물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성각과 요사채·만세루 등이 있으며,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극락전 앞에는 기단이 무너져 위태로워 보이는 오층석탑이 있으며, 동쪽 산기슭에 8기의 부도가 전한다. 이 수도사 석탑 및 부도군이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의령군에서는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도사 [修道寺] (두산백과)

의령에 있는 수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승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면 소재지에서 신덕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약5km가량 가다보면 오른편에 이목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를 끼고 1km쯤 더 들어가면 멀리 산 아래 몇 채의 마을이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양편에 요사체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각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 지어 놓았다. 극락전 앞뜰의 5층 석탑은 하부기단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형상으로 서있는데 이 석탑의 원위치는 그 자리가 아닌 듯 보인다.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또 수도사는 동쪽 산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군이 서 있는바 이것들을 미루어 옛날에는 이 절의 규모가 제법 컷을 것이라는 주지의 말이다. 한편 이절이 있는 신덕산은 합천의 황매산으로부터 뻗어온 줄기로 산세가 매우 웅장할 뿐만 아니라 우거진 잡목림에 경관이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 수도사의 역사와 걸어온 길 *

수도사는 지금부터 약 1300여년전, 신라의 30대 문무왕 2년 (66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라고는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 7왕자가 의령 수도산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수도사(의령)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의령 수도사 극락교


아담한 절에는 한달음에 이를 수 있는 주차장이 있지만 일부러 아래쪽 극락교 부근에 차를 세웠습니다.절 가까이 있는 주차장은 극락교를 지나 절로 향하는 경건한 마음을 깃들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령 수도사 만세루


극락교를 지나면 속계(俗界)를 벗어나 선계(仙界)로 들어서는 기분입니다.계단 하나하나를 염주 알을 헤아리며 기도하듯 올라갑니다.

의령 수도사 만세루에서 바라본 극락전


계단을 지나면 신덕산수도사라는 편액이 걸린 만세루가 나옵니다.만세루 아래에 서면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이 더욱더 우르르 보입니다.

의령 수도사4층 석탑


극락전 앞뜰에는 남북국시대(통일신라) 4층 석탑이 오는 이를 반깁니다.석탑 주위에는 다양한 캐릭터의 동자승 등이 놓여 있습니다.

의령 수도사 극락전

수도사는662년(신라 문무왕2)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 옵니다.전설에 따르면 원효가 이 절 뒷산 병풍바위에서 제자들과 수도한 까닭에 이름도 수도사라 불렸다 합니다.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유정이 중건했습니다.

의령 수도사 극락전에 그려진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 일화


극락전에는 당나라로 의상대사와 유학가려다 밤중에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 득도(得道)를 한 원효대사의 일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데 어제는 상쾌하게 마시고 오늘은 구토를 한단 말인가.이 모두가 마음먹기 달렸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의령 수도사 칠성각

의령 수도사 극락전에 모셔진 진신사리

의령 수도사 극락전 내 진신사리함


마음먹기 달려다 생각하며 극락전에 들어서자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바로 옆에 있는 부처님 진신 사리함으로 향했다. 2017년 손상된 칠성탱을 수리하던 중1901년 봉안된 부처님 진신사리7과가 나왔다고 합니다.영롱합니다.어찌 보면 이(齒)같고 어찌 보면 옥 같습니다.친견한 뒤 물러나왔습니다.

의령 수도사 극락전에 바라본 산


극락전에 서자 산의 짙은 녹음이 싱그럽게 일렁입니다.덩달아 몸과 마음도 푸르게 물들였습니다.


의령 수도사 극락전 뒤편에 있는 모감주나무와 배나무에 기도하면 소원 성취한다는 전해온다. 극락전 뒤편에는 의령 삼부자와 인연한 모감주나무와 배나무 전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습니다.의령 삼부자의 선대인 이씨 구씨 조씨가 불사에 참여한 후 모감주나무와 배나무를 기념 식수했는데 이 나무에 기도하면 소원을 성취하고 부귀해진다고 합니다.

의령 수도사 아름드리 느티나무


휴~숨을 크게 한 번 쉽니다.기분 좋은 휘파람이 절로 몸 안에서 흘러나옵니다.일상으로 돌아갈 삶의 활력을 얻고 갑니다.마음속에 깃든 평화를 간직한 채 절을 나옵니다.

수도사 


이번 방문지는 의령 9경에 속하는 수도사를 방문하는 길이다. 야트막한 산아래 크지 않게 자리를 잡은 사찰이 아주 인상깊은 곳이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지 고즈넉한 산사에는 우리 부부 뿐이다.

​이런 여유로움 정말 얼마만인지~ 항상 북적이던 곳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다가 이런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에 오게되니 힐링이 절로 되는듯 하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기에 입구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른 숲길이라 한시도 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구불구불 거리는 길이 높게도 펼쳐 있기 때문이다. 이곳 수도사는 신기하게 대웅전 대신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662년 신라 시대 문무왕 2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헌데 지금 사찰 모습이 너무 현대식이라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역시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수도사는 칠성각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2017년 손상된 칠성탱을 수리하던 중 1901년 비밀리에 봉인된 부처님의 진신사리 7과가 나투었다고 한다. ​아마도 짐작하기에 일본인이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약탈하고 도굴하는 분위기에서 비밀리에 칠성탱화 복장속에 숨겨둔 것이 발견된 것으로 보인단다. ​이후 신도들이 법당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졌던 칠성각을 더 중요시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니 그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되었다.

​1789년 감로탱화를 제작 봉안한 후 기념식수로 모감주 나무와 배나무를 극락전 뒤에 식수하였는데 우리의 눈에는 모감주 나무가 어떠한 것인지 도무지 찾을수가 없다. 식물도감이 필요한 시점 ​그 모감주 나무와 배나무에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나무를 모르겠으니

극락전에서 내려다본 만세루의 전경이다.

​만세루 너머로 병풍처럼 둘러쌓인 사찰의 풍경이 고즈넉하기만 하다. 이미 가을은 깊게도 내려 앉았다. 아직도 불사가 한창인 사찰로 신라시대부터 전해오는 오랜 역사에 비해 너무 현대식 건물이라 조금 실망을 하고 나온다. 하지만 울창한 숲의 모습은 그것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의령 9경 잇다'라는 저희 천율이 지역 명소를 활용하여 기획한 

공연으로, 의령의 문화가 곁든 여러 명소들에서 함께 어우러진 

천율을 보여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