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시조

이미지 없음

영제시조


영제시조(嶺制時調). 경상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시조창. 1990년 5월 15일 대구광역시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시조창은 전통 성악고의 한 갈래로 시절가, 시절단가라고도 한다. 고려 말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최고 문헌은 석북 신광수(1712-1775)의 〈석북집〉, 〈개서악부〉로 가객 이세춘이 시조에 장단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초의 악보는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 순조 때 간행된 〈유예지〉에 처음으로 경제(京制) 평시조 악보가 전하고 있다. 이를 보면 시조창은 조선 후기에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현재의 평시조처럼 황종, 중려, 임종의 3음부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후 여러 가지 가곡의 영향을 받아 많은 시조 곡조가 파생되었고, 시조창이 각 지방으로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 지방의 기호에 맞는 지방적 특징이 발생하게 되었다. 서울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한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 충청지방의 내포제(內浦制)가 그것이다. 영제, 내포제, 완제를 묶어 향제(鄕制)라고도 한다. 영제의 평시조는 경제와 비슷하다. 영제는 경상도 지방의 말씨를 닮아 액센트가 강하고 씩씩하며 웅장한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영제시조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어 ‘영판 좋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음악성이 인정되어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시조인들 사이에 널리 애창되던 시조이다. 또한 점잖고 격조가 높아 궁중에서도 숭상한 시조창이다. 영제 가운데 각 지방의 보편성이 가미된 것을 반영제라고 한다. 영제시조로 가장 많이 불리는 종류는 평시조와 사설시조이다. 영제 평시조는 원래 다른 향제 시조와 같이 3.5박이었으나, 현재는 5.3박으로 치고 있어 박수와 형식은 경제와 같다. 즉 현재의 영제 평시조는 3장으로 갈라 초장은 3분박 5박자와 3분박 8박자를 5.8. 8.5.8로 , 중장은 8.8.8.8로, 종장은 5.8.5.8로 짜여져 있다. 영제시조의 명창으로는 경주 출신의 최창노가 알려져 있으며, 고종 때 영제시조의 3대 명창으로는 경상북도 군위의 고영태, 경주의 이명서, 경상남도 의령의 손덕겸이었다. 그 다음 세대로는 김영도와 이계석이 유명하다. 그리고 영남국악원장을 맡기도 했던 유일지가 있는데, 그는 이명서의 제자 전현곡에게 사사하였다.